지금까지, 지금부터
박정원 ( Pageroom8 디렉터 )
신준민 작가의 작업에 대한 첫인상은 2021년 제작한 ‘흰 빛’1)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당시 작가 의 풍경에서 장소성이 휘발된 자리에 빛의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백색광과 반사광을 입 은 자연물이나 사물 그리고 작가만의 브러시 스트로크가 반복되는 터치들로 변주된 빛의 모습 은 캔버스 전면에 드러난다. 단, ‘흰 빛’에서만큼은 해질녘 물에 비친 윤슬과 인물들의 모습이 역광으로 표현된 이미지의 아름다움은 노스탤지어 같은 정서에 놓인 것이 아니었다. 윤슬은 매 순간 빛을 통해 모든 것을 반사하며 동시에 수용하며 반짝이는 물의 표면이다. 물의 운동 성과 시각으로 인지되는 자연의 미감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혼합되고 색채의 층위로 재구성된 다. 당시 회화성 짙은 표현 형식을 통해 마치 “지금까지 본 것을 지금 내가 그리고 있다”는 현 존성을 직감했던 것 같다.
이번 개인전 《Penumbra》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필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흰 빛’을 보며 느 낀 인상을 소환한다. ‘Penumbra’[페넘브라]는 천문학적인 용어로서 부분 일식·월식의 반그림자 를 일컫는다. 일정한 크기를 가진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물체를 비추었을 때 생기는 그림자 가운데, 본그림자 주위에 빛이 부분적으로 도달하여 생기는 흐릿한 그림자를 말한다.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가 하나의 시야에 놓인 구도와 빛과 인물 그리고 작가가 존재함으로써 완성된 〈흰 빛〉의 장면이 겹쳐 보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를 통해 작가가 그동안 천착한 소재 ‘빛’을 자신의 내면이나 시각에 상으로 맺는 방식에 대해 골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 와 관련된 일련의 제작 과정은 비물질적인 소재를 회화적 방법론의 구조를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2년 사이 신준민 작가의 활동 거점이 대구에 이어 서울로 확장되었다. 서울에 작업실을 두고 일주일에 두 지역을 오갈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와 조건은 작가에게 새로 운 시각의 지평을 더해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미지의 중첩이다. 전시 제목, ‘페넘브라’가 물 체와 그림자가 혼재되어 보이는 경계의 지점 즉, ‘반그림자’를 의미한다. 이처럼 작가가 두 지 역을 오가는 행위를 통해 빛은 좀 더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지의 층위는 사 실 작가의 기억에 기인한 것인데, 오고 가는 행위 안에서 보고 느끼는 감각은 ‘시간성’을 획득 하게 된다. 특히 일관된 동선을 통해 보는 동일한 풍경에서 발견한 꽃의 개화나 하늘의 색채 그리고 구름의 모양 등에서, 과거의 기억이 지금이라는 시점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려 오면서 흐릿하고 때때로 선명한 다중 층위의 결정체가 된다. 신작 〈하얀 숲〉, 〈Bloom〉, 〈빛 꽃〉 등이 대표적이다.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서 주지하다시피 지각과 기억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현재의 기억은 과거의 여러 층위를 뚫고 나온다. 특히 잔상은 망막에 남는 빛의 여운이기에 신준민 작가의 빛에 발현된 시간성은 앞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1) 신준민 작가 홈페이지, ‘Painting’ 항목에서 ‘2021 White Light’ 작품 이미지 참고
https://www.shinjunmin.com/2021-White-Light
‘Afterimage(잔상)’를 통해 본다는 것과 기억 속 심상에 대한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동 경로에서 시각적으로 채집한 ‘Trace(흔적)’ 소품 연작은 이번 작업의 단초가 되었음을 보 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의 감성과 감정이 색채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또한 과감하고 새로운 브 러시 스트로크 시도 역시 지속되고 있다. ‘Spotlight(스포트라이트)’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는 빛을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좇는 관찰자이자 산책자로서의 태도를 ‘Spotlight’ 시리즈를 통해 가감 없이 선보인 바 있다. 인공 조명 ‘스포트라이트’ 소재가 초기에는 재현으로 시작했 다. 그 이후에 점차 추상화되며 작가의 감정을 투영하는 붓질과 여러 층위의 색채들이 입혀졌 다. 최근에는 조명의 형태는 거의 사라지고 빛 자체로 표현되며 변모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그동안 빛이 그의 작업에서 독립된 주된 현상이자 개별적 존재로 다뤄졌다면, 지금은 하나의 화면에 페이드인(Fade in)과 페이드아웃(Fade out)처럼 서서히 희미해지거나 또렷해지는 장면 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작가의 환경 변화로 인해 빛은 하나의 종합적인 장면/풍경을 수용할 수 있는 일종의 “공기” 같은 바탕이 된다. 무엇보다 신준민 작가의 회화에서는 잔상, 흔적 그리고 기억 등이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적 행위에 유효한 구성 요소라는 점 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