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 풍경화 : 회화의 사건성


김승호 / Dr. Kim, Seung-Ho



신준민은 풍경과 빛을 분리하지 않는다. 대작과 소작 모두가 빛과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화면
-공간을 지배한다. 단색으로 얇게 칠해진 사각형의 화면에 여백과 응집이 호환을 이루어 빛과 풍경이 중첩된다. 화면의 층이 두터우면서도 붓질이 매우 섬세하다. 볼 수 없는 빛이 풍경과 부딪히면서 풍경묘사와 빛=재현에서 이탈한다. 파동과 입자적 성질을 동시에 지닌 빛이 정적 인 풍경을 흔들어 놓는다. 신 작가는 코로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도시든 자연이든 풍경 의 분위기를 재현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의 최신작들이 현대미술에 자리매김한 빛과 풍경과 중첩되면서 빛-풍경화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한다. 신준민 작가의 최근 작품 속에서 빛과 풍 경을 따로따로 분석해보자. 그의 빛-풍경화를 관조하는 재미도 진지 해진다.
작가 신준민은 여행에서 얻은 고풍스럽거나 아름답거나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사건을 품은 풍 경을 선택하지 않는다. 보편적이자 일상적인 풍경들이 지배적이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혹은 자연에서 도시로 나 홀로의 이동에서 획득한 나무, 숲, 구름, 도시 풍경들이 화면 속에 자리한 다. 봄기운에 자라나는 자연물 풍경, 여름에 잎으로 덥힌 나무 풍경, 화창한 가을밤의 하늘 풍 경, 겨울 초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와 멀어져가는 도시 풍경, 추운 겨울 눈에 덥힌 소나 무 한 그루 및 앙상한 나뭇가지가 모습을 드러낸 숲 풍경 등 누구나 어디서나 마주치는 장면 들이다. 신 작가는 일상적이자 보편적인 도시와 자연 풍경에 색을 입힌다. 파편화된 풍경 자 체는 보편적이지만 폭발과 섬광, 파편화된 빛의 이미지가 화면 전체를 덮으면서 풍경은 고요 의 장에서 사건의 무대로 변신한다. 하늘과 나무는 숲이나 도심 속의 가로수는 불현듯 불안정 하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로 변신한다.
신준민은 풍경에 빛을 첨가한다. 그 만의 회화적 전략이다. 풍경에 빛이 첨가되면서 풍경이 재현의 대상에서 폭발, 섬광, 파편 등 에너지의 궤적 같은 사건과 결합한다. 그러니까 그의 시 리즈에서 풍경은 고요하고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는 무대인 셈이다. 빛의 폭발 적 형상화도 다양하다. 간략하게 살펴보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적 역동성, 중앙에서 사방으로 확산하는 팽창성, 좌에서 우로 그리고 우에서 좌로 넓어지는 수평적인 확장성도 볼 수 있다. 빛-⑨어리가 파괴되면서 점으로 부서지는 무한성, 화면 곳곳에 반짝반짝 빛나는 구 심력과 팽창과 부서지는 찰나적인 순간성도 담보한다. 빛이 수축하는 순간의 원심력도 놓치질 않았다. 운동하는 빛, 실제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마저 풍경의 무대에서 펼쳐진 다.
신준민의 빛-풍경화 시리즈는 전략적이다. 보편적이자 일상적인 풍경에 빛이 투사되어 정적인 것에서 사건으로 전환한다. 층층이 쌓인 붓질과 색채의 확산이 마치 순간의 섬광을 캔버스에 응축한 듯한 효과가 압도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빛이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현상학적 경 험도 제공한다. 빛은 이렇게 보는 순간을 강렬하게 체험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신 작가는 이 렇게 회화적 무대에서 정적인 매체가 얼마나, 어떻게 동적인 사건성을 구현하는지 빛을 투사 하면서 실험하고 구현한다. 보이지 않는 빛=대상으로 소재의 속박에서 해방한 작가는 감상적 풍경화를 사건으로 해석해 빛-풍경화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빛-풍경화 개념에 시선을 모아보자. 일상적인 풍경이 빛으로 변신하면서 현실적인 풍경을 거 부한 빛-풍경화는 전위적 미학이다. 구체적인 자연의 현상 즉 나무와 하늘과 구름과 숲과 도 시공간이 섬광과 파편과 같은 이미지와 맞닥뜨리면서 재현과 추상의 경계마저 유영한다. 폭발 과 섬광이라는 이미지는 작가가 마주친 현상이겠지만. 사회적 충돌도 암시한다. 코로나 이후
 
빛과 풍경의 통섭이 작가 본인에게는 창작의 자유를 향한 울부짖음이지만, 관찰자인 우리에게 는 시대적 불안과 문명적 위기의 은유로도 읽힌다. 부가적 설명조차 필요치 않다.
신준민은 최근의 시리즈에 빛-풍경화 개념을 세부화한다. 그의 시리즈는 빛 즉 섬광과 파편의 시각화를 통해 정적인 풍경이 사건의 무대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회화가 다시금 사건으로 회 귀한다. 반면에 자연이든 도시 풍경이든 현상학적 사건과 병치 되면서 초현실적 화면공간도 내포한다. 풍경과 빛이 붓과 색으로 중첩되면서 한편으로는 재현과 추상, 다른 한편으로는 고 요와 폭발이 교차하면서 경계의 미학이 개념에 자리한다. 전통적 풍경화에 기댄 작가가 시대 적 사건과 긴장감을 담아낸다는 비평적 믿음도 선사한다. 종합하면, 신준민은 빛-풍경화라는 시각적 개념으로 회화의 사건성을 복원한 작가다. 물론, 화면 속 섬광은 빛의 묘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빛-풍경 시리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람자를 휘말리게 하는 현상학적 체험 으로 간주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현대회화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람자는 어떻게 화면과 마주해야 하는가. 한국화든 서양화든 고요와 정적의 장르였 던 풍경화와 멀어져야 한다. 나무가 세월의 흔적이고 하늘은 관조의 배경이라는 익숙해진 경 험에서 멀어져 섬광과 폭발 그리고 파편과 빛의 궤적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순간의 폭발, 눈부신 섬광, 날카롭게 흩날리는 빛의 조각들이 자연과 도시의 질서가 해체되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하늘이 고요한 파란빛이 아니라 찢겨 나가는 격렬한 무대 공간이라는 것도 체현할 수 있다. 빛-풍경화가 작가에게는 사건과 긴장이 교차하 는 공간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숙고의 과제도 남겨놓는다.
신준민은 풍경화를 다시 쓴다. 고요한 풍경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 사건을 투사한다. 그리하여
한국화와 서양화로 구분된 전통적 장르를 거부하고, 빛-풍경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한 다. 우리가 빛-풍경화에 더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선명해진다. 신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신준민이 현대 회화가 어떻게 다시 사건이 될 수 있는가를 물었고, 그의 시리즈는 우리의 시 선을 이미 사건 속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